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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더 큰 선물

by 다알리아꽃 2021. 8. 19.

더 큰 선물

 

(다알리아)

 

 어느 할머니를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8시간 동안 따라다니라는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 병실 안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는 요양보호사의 간곡한 당부였다. 할머니와 함께 복도를 계속 돌아다니라고 했다. 우리는 긴 복도를 계속 돌아다니니까 나중에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지루했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고 또 돌았다. 한번은 할머니가 용변을 보고 싶다고 해서 급히 병실에 딸린 화장실로 갔다. 볼일이 끝난 후 화장지를 한마디만 잘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서 닦았다. 순간 손에 다 묻어버렸다. 본인도 자지러지게 놀라면서 어떻게, 어떡하지를 큰 소리로 외쳤다. 떨리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갑자기 초록색 변으로 가득 찬 변기통 안에 손을 넣고 막 흔들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나름대로 느낀 사실이지만 할머니가 뒤처리 하려고 손을 깨끗이 씻으려고 선택한 방법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할머니를 병실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병실에만 오면 아랫도리가 꿉꿉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왜냐하면 24시간 내내 기저귀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벽에 똥칠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용변 후 뒤처리 방법을 잊어버려 하얀 벽지가 휴지로 알고 닦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를 보고 이게 누구지, 누구야 누구하면서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른 할머니는 병원 복도 바닥을 맨손바닥으로 온종일 닦고 돌아다닌다. 손바닥을 자세히 보니 갈라지고 얇아져서 곧 피가 날거 같아보였다. 본인은 아픈 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닦고 또 닦는다. 고무장갑을 끼워주고 걸레를 손에 쥐어 주어도 어느새 맨손으로 닦고 있다. 닫힌 병실문도 열지도 못하면서 깨끗하게 하려고 손잡이를 계속 만진다. 딸은 엄마가 너무도 안타까워 따라 다니면서 청소하지 말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딸 얼굴도 잊어버리고 할머니 기억 속에는 오로지 깨끗하게 청소해야 된다는 한 가지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청소 못하게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 손발을 묶어 놓은 적도 있었다.

 다른 젊은 여자는 초로기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초로기치매란 뇌의 기능저하로 일어난 치매로 후천성 뇌손상으로 인한 것이며 노인성 치매보다 빨리 강하게 일어나는 질환) 이제는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잠시라도 없으면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데 까지 병이 진행된 것이다.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가 누군지, 왜 병원에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생활도 아예 못한다. 본인의 슬픈 기억도 기쁜 추억도 아예 다 잊어버렸다. 너무 젊어 보여 어찌나 안타까웠던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양원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는 음식을 먹고 삼키는 것을 잊어버렸다.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이 안 된다. 특히 식사 시간에 밥 한 수저 삼킬 때 마다 꿀꺽 넘기라고 손짓 발짓 다하며 얘기하면 어쩌다 겨우 삼킨다. 잘못 삼켜서 먹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어려운 시간이었다. 어찌 되었던 먹어야 사는 거 아닌 가...

치매전문병원에서 실습 때 겪었던 일들이다. 치매가 무엇인지, 기억을 잊어버리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지를 몸과 마음으로 경험했다. 말만 듣고 어렴풋이 무섭다는 것만 알았지 이정도 까지 인줄은 처음 알았다. 치매 걸린 분도 고통스럽지만 특히 이런 환자가 있으면 보호자가 한시도 떨어지면 안 된다. 항상 같이 있어야 돼서 더 힘들다. 하도 변수가 많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환자가 전혀 말을 듣지 않고 금방 잊어버려서 한말 또 하고 보호자도 끊임없는 인내와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씩 잊어버리다가 치매 말기가 되면 한 가지 기억만 남게 되는 것 같다. 몸은 극도로 허약해져 합병증이 생겨 결국은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된다.

국가자격증(요양보호사자격증)을 내게 선물하려고 시작은 했지만 치매병원에서 여러 경험들은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주어서 자격증보다 더 큰 선물이라고 느꼈다.

 

 

 

2018년 "고맙습니다 내 인생 " 고양시 화정도서관에서 자서전을 썼다.

내 평생 처음 써보는 글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같이 공부한 분들과 책이 나오니 넘 기뻤다.

살다보니 이런일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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