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은수저
-다알리아-
“ 엄마, 아버지 수저는 어디 있어요 ? ”
오늘도 식탁위에 아버지 은수저가 안 보인다.
식사 시간마다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하는 은수저다.
안 보일 때는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없다. 도대체 어디에 꽁꽁 숨겨놓았는지 우리는 절대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다른 수저로 밥을 먹는다.
그런데 요사이는 이런 일이 자주 생겼다. 정말 CCTV라도 설치해서 엄마는 어디에 두었다가 찾아오는 것인지 은수저의 행방을 알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쩌다가 은수저가 식탁위에 놓여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주 풀지 못하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돼버렸다.
돌아가시고 안계시기 때문이다.
왜 어떤 때는 식탁위에 은수저를 놓았다가 안 놓았다가 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아버지가 미웠다가 예뻤다가 하는 감정이 수저를 놓고, 안 놓고 하는 행동으로 표현한 게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친정아버지를 보살펴 드리러 친정에 왔다 갔다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생활하다보니까 엄마가 치매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
전에는 엄마가 패물이 없어졌다고 친정 나들이 가면 가끔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와서 환경이 바뀌어서 어디에 둔줄 모르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느 날은 가끔 가스 불을 끄지 않아 냄비도 새까맣게 태운 적도 있다.
혹시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너무 걱정돼서 가스타이머도 달아드렸다.
원하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꺼지는 장치이다.
또 아버지는 찹쌀로만 밥을 해서 드신다.
찹쌀이 나중에 보니까 수두룩했다. 이 곳 저 곳에 많이 쌓여 있었다.
엄마가 찹쌀이 없다고 하면 무조건 찹쌀을 샀기 때문이다.
어쩌다 친정에 다니러 가면 그 때는 잘 몰랐지만 같이 오랜 시간을 생활하다 보니 엄마 치매 증상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리면 기본증상이 있고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르게 나타나는 주변증상이 70가지나 된다는 것도 이론 시간에 배웠다
집도 못 찾아오기도 하고 망상이 생기고, 폭력 적으로 변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 등등 다 나열 할 수가 없다.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치매전문병원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치매환자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절대로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들었다.
지난시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도 서서히 치매가 진행되어 왔던 것 같다.
초기에는 식구들도 눈치 채지 못한다.
어느 정도 병이 진행 되고, 특히 같이 살아서 관심 있게 봐야만 겨우 알아 챌 수 있는 병이 치매인 것 같다.
요사이 국가에서 미리 치매선별 검사를 하는 일은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알게 되기까지는 한창 진행되어야만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미리 알게 되면 완치는 못하지만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니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엄마도 어느 정도 진행 되서 나중에 알게 되었다.
두 분만 살고 계셨기 때문에 잘 몰랐다.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더라도 예쁜 치매가 진행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병원에서 치매에 걸리면 생을 어떻게 살다 가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병이 깊어질수록 다행히 엄마는 웃고, 남에게도 대할 때 친절한 모습이었다.
짜증내는 표정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트로트를 많이 좋아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알고 같이 부르려고 우리 동네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배웠다.
엄마랑 같이 노래 부르기를 하면 그 가사는 잊지 않고 따라서 부르는 게 놀라웠다.
엄마는 “사랑의 밧줄” 이라는 김용임 노래를 제일 좋아했다.
지금도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그 사람이 떠날 수 없게” 라는 노랫말이 귓가에 맴돈다.
왜 그 노래를 좋아했을까?
나도 잘 모르는 노래다.
그때 배운 노래다. 지금은 그 노래가 어쩌다 흘러나오면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집에서 같이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목욕탕에서 목욕을 끝낸 후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어 넘어졌다.
엄마가 다른 사람들 보다 커서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서게 할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부축해 방으로 들어가 눕혔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너무 놀라 순간 엄마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한참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엄마를 넘어지게 했나 하는 원망하는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 순간에 큰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다행히 어디 다친 데는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더 큰일이 일어났다.
그 후부터 용변을 혼자서는 해결하지를 못했다.
결국은 요양원에 가셔야만 했다.
아버지도 엄마를 혼자 보낼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당신이 꼭 돌 봐야 된다고했다.
하도 고집을 부리셔서 요양원으로 같이 가셨다.
요양원 생활은 계속 되었다.
아버지께서 요양원에 계시다가 갑자기 목욕탕에서 넘어져서 고관절도 수술도 했다.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했다.
당뇨와 고혈압 합병증때문에 빨리 회복도 못하셨다.
결국은 누워서 보내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심신이 나약해져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해서 요양원에 갔다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당뇨발이 생겨 무릎 아래까지 잘라내셨다.
또 합병증이 생겨서 치료 받다가 엄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엊그제 일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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